관절의 구조와 역할
동양의 전통적인 사유 방법인 관(觀)한다는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두루미가 높은 곳에 앉아 대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듯 하는 것이다. 마치 불가의 공안(公案)을 풀듯, 관절도 이처럼 관해야 한다.
우리의 몸을 위해 평생을 노예처럼 봉사하는 팔다리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팔다리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관절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들의 희생으로 생동(生動)하는 동물의 본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써먹다 보니 낡고 말았다. 아니 너무 오래 썼다기보다 잘못 사용하여 사용 기한의 절반도 못 넘긴 채 낡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퇴행성관절염이 생긴다.
낡고 지친 팔다리의 관절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을 봉사하다 병든 마디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 위로하고 어떤 약으로 고쳐야 될까?
이를 고찰하기에 앞서, 우선 관절의 구조와 역할을 살펴보자.
우리 몸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윤활관절’의 대표적인 모습에서, 관절 사이에 윤활액이 말랑말랑한 정구공처럼 작은 물주머니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건강한 윤활액은 날계란의 흰자위처럼 맑고 투명하고 끈적거린다. 정구공은 물렁뼈(연골)와 더불어 좋은 쿠션을 만들어 관절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준다.
관절의 이러한 구조는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 동물(動物)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관절들이 조화를 이루어 굴신(屈伸)하므로 몸의 동작을 둥글고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자칫 무릎관절 하나만 굳어도 중국 영화에 나오는 강시처럼 통통 튀면서 걸어야 할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동물은 생동(生動)하는 관절기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들 동물과 달리 식물에는 관절이 없다. 물론 관절로 추상(抽象)되는 마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은 없다. 식물이 관절을 포기하고 붙박이 삶을 선택하며 획득한 것은 거의 영생에 가까운 수명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천 년이 넘는 생명을 보장받았지만, 그 대가로 붙박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100년 남짓한 삶이지만 그 대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다. 그 자유는 관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팔다리의 관절도 그것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깊이 생각해보면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일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관절의 말없는 봉사, 그러한 헌신적인 희생으로 우리는 산으로 들로, 하와이로 알프스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평생을 노예처럼 부리고 혹사시켜 퇴행성관절염이 생겼다. 관절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보답해주어야 마땅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관절이란 희생적인 토(土)의 역할을 하는 마디이고
관절을 이루는 질료(質料)는 교질이며
퇴행성관절염이 생기면 보법(補法)을 위주로 치료해야 한다.
오행(五行)으로 추상한다면, ‘마디’라는 역할로서의 관절은 토(土)라 할 수 있고 물질적 질료로서의 관절은 금형(金形)으로서 생명력인 목기(木氣)와 수기(水氣)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평생을 노예처럼 부리다가 퇴행성 변화가 생겼다면 그 치료는 이감위군(以甘爲君)*의 보법으로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이다.
허증(虛證)은 보법으로 고치는 것이다. 즉, 한의학적으로 해석된 관절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의학 치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보법을 통해 퇴행성관절염을 고칠 수 있다. 보법은 현대 서양의학에서는 그 개념조차 없는 우리 한의학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나이가 들면서 생긴 퇴행성관절염 치료에 있어서 비침습적 치료를 뛰어넘는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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